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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향토연구회, 정체성을 밝혀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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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인뉴스] H 향토연구회, 정체성을 밝혀야 할 때
전용식 총괄기자 jys@hongjuin.news

H 향토연구회의 지난 몇 년 간의 행보에 우려의 소리가 크다.

정체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난 해 11월 22일 충남도서관 강당에서 개최한 ‘백제부흥전쟁과 주류성의 가치 재조명 국제학술세미나’ 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알다시피 H 향토연구회는 지난 1987년 홍주의 향토사를 연구하고 사료의 발굴을 목적으로 홍성문화원 부설로 창립된 단체이다. 40년 전인 1980년 경 박성흥 선생은 고산자 선생의 『대동지지』 홍주목조에서의 “홍주목 본백제주류성 당개지심주(洪州牧 本百濟周留城 唐改支潯州) 연구를 시작했고, 이러한 연구는 1990년 전국문화원연합회 주최 논문대회에서 박성흥 선생의 ‘홍성주류성고’가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학계에 홍성주류성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계기가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주류성의 위치를 찾고자 연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주류성의 정확한 위치는 설만 가득할 뿐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보면 부흥군의 거점성 중 임존성(충남 예산)과 가림성(충남 부여), 두솔성(충남 청양) 등은 위치가 분명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정작 주류성은 ‘이름은 있지만 위치가 어딘지 모르는 지역(三國有名未詳地分條)’으로 분류됐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확한 위치를 두고 설왕설래 하고 있다. 환언하면 H 향토연구회는 박성흥 선생의 ‘홍성주류성고’를 시작으로 백제부흥전쟁사 관련 주류성을 찾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홍주향토문화에 나타난 것을 살펴보면 1994년 주류성 고증 학술발표대회, 1996년 백제부흥운동 순의열사 위령제 개최, 1995년 홍주 석성산성 건물지 발굴(상명대학교 역사문화기록연구소), 2004년 4월 내포고대사와 홍주주류성 연구 출판, 2011년 홍주주류성 고증에 대한 학술세미나 개최(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17년 1월 연구회 내 주류성연구소 설립, 12월 백제주류성과 백강, 백제부흥운동전적지와 홍주 출판 등이다.

이렇듯 박성흥 선생의 ‘홍성주류성고’가 연구의 주춧돌인 H 향토연구회의 기조가 일순간 바뀌게 된 것은 2018년 11월 ‘백제부흥전쟁 전적지와 홍성’, 2019년 11월 ‘백제부흥전쟁과 주류성가치 재조명’ 세미나에서이다.

L 교수는 2018년 11월 ‘백제부흥전쟁 전적지와 홍성’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두솔성은 주류성은 동일한 성이다”, “풍왕이 663년 12월에 주류성에서 왕도를 옮긴 피성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라 주장했으며, 2019년 11월 국제학술세미나에서는 차령산맥 넘어 동쪽의 청양과 보령시 성주면 옥마산 사이에 위치하였을 거라는 추상적인 주장을 하며, 본인이 주장한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의 피성설을 번복했다.

또한 L 교수는 ⌜백강에서 다시 백강구로 나온 것이다⌟라며, 대천앞바다가 백강이라 주장하지만, 부흥전쟁유적지의 지명이 다른 것처럼, 각각 그 확실한 위치도 다르고, 그 성격도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깊은 관련이 있고, 인접한 동일 지역에 위치한 백강구(백촌강), 백촌(백석촌), 백사 등의 위치에 대한 언급이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기에 일각에서의 H 향토연구회의 정체성을 밝히라는 것이다. H 향토연구회와 관련 있는 모 씨는 “사실 연구회의 백제부흥운동과 관련된 연구물의 성과는 故 박성흥 선생과 그의 연구를 이어서 하고 있는 박태신 씨의 것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며 “독자적인 연구 실적이 없으니 어느 한 개인에게 의지하고 그의 연구물을 진리인양 겉치레해서 홍성군이나 충남도청에다 사업비만 신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결과물에 대한 확인도 안하고 있다며 예산낭비의 표본이다”고 주장했다. 전용식 총괄기자 jys@hongjui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