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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in뉴스

1,000여 한국광복군 영령을 잊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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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 한국광복군 영령을 잊지맙시다! - [對日 선전포고 80주년]

 

일본군 내의 한국 국적 사병 수십 명을 초모 공작 중 포로가 되어 해방 이틀 후 총살형으로 31세의 젊음으로 생을 마치신 광복군 제2지대 김천성 지사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역만리 중국의 황야에서 산화하신 이름도 시신도 없는 한국광복군 1.000 여 영혼들께 용서를 빕니다.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건국공로 훈장 포상자 575 분!

1941.12.10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 성명서의 밑돌이 되었던 한국광복군은 이제 이 세상에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1939년 34명의 20대의 한국 청년들은 조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중국 중경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만들어 중국 청년들과 함께 항일 전선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다시 1년 후 자발적으로 일제와 싸우기 위해 무장 투쟁 단체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28명이 서안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원들은 태항산 일본군 제36사단 주둔지내에 깊숙이 침투하여 이도순 일본군 통역관등 한국 국적 사병들을 초모하여 100 여명의 부대를 만들었고. 태항산에서 중국 제34집단군 호종남 부대와 연계하여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많은 청년들이 전사하셨습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100여 명은 1941년 1월 1일 사회주의 이념의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합류 유혹을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 한국광복군의 5지대로 편입되어 비로소 한국광복군은 군대로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고 1941.12.10. 임시정부는 광복군이 있었기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국제적으로 인정 받게 된 것입니다.

항간에는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창군의 밑돌이며 임시정부가 끌어들였다는 허무 맹랑한 날조 문건과 또한 조선혁명자연맹이 청년들을 뽑아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였다는 역사를 왜곡한 허위 날조 문건들이 인터넷과 정부 문건에까지 난무하고 있습니다.

1938.10.10. 조선의용대는 중국군사위원회 정치국 소속으로 조직 되였으며 19421.3월경 130여명의 조선의용대원 중 110명이 사회주의자들의 꿈인 “중공천당”이라는 중국공산당으로 탈출하자(6.25 당시 조선인민군 남침 주력 부대) 김원봉은 임시정부의 약점인 중국정부에 대한 의존도와 중국군사위원회의 황푸군관학교 동문들의 도움으로 광복군 직제에도 없는 부사령관 자리와 제1지대를 요구하였고 이에 김구 주석께서는 “그들이 오면 우리 조직은 분열된다” “우리는 혁명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에 따라 직제를 만들 수 없다”라 반대 하셨지만 중국군사위원회 장개석의 일방적인 압력에 의하여 김원봉은 조선의용대 중경 잔류 병력 21명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창군 광복군 5지대로 편입된 1941.1.1. 보다 1년 반 뒤인 1942.7월 광복군 1지대로 편입하여 광복군 창군과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1940.9.17. 광복군 창군 1.2.3 지대 편성(30여명)
*1941.1.1.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광복군 5지대 편입(오열)
*1942.5 조선의용대 21명 1지대 편입
*1942.5 광복군 2..5 지대 통합 철기 이범석 2지대장
*1945.6.30. 광복군 3지대 창립(일본군 탈출 학병 주력)

광복군 초기 편제에 1지대 김원봉을 삽입하는 것은 왜곡이다

[김원봉이 광복군과 합류 후 1942.6.1. 조선의용대 미국 LA 연합회 안석중에게 보낸 전보에는 광복군은 중국군사위원회의 직접 지휘하에 있다 .임시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의용군이 계속 활동하도록 연합회를 재조직하십시오. 상세한 내용은 편지로 알려드리겠습니다]라는 민족배신의 전보를 보냈습니다.

국민 여러분 ! 한국광복군 노병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망국의 군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라고
광복군 노병들께서는 해방된 조국에서 장례비가 없어 주민들이 장례를 치루었어도 눈을 감으실 때까지 조국 대한민국을 걱정하셨는데 유골을 현충원으로 이장하는데 50만원의 이장비를 주며 모든 비용은 유가족이 부담하라 이것이 현실입니다.

해방 후 76년 한국광복군 노병들은 그리도 찾고자 했던 조국 자유 대한민국을 찾았건만, 대한민국은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건만,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와 정치가 독립운동가들에게 가리워져 조국에서 잊혀지고 국민의 뇌리속에서 망각되고 있습니다
1965년에 600 여명의 광복군들로 창립되어 56년을 이끌어 온 한국광복군동지회는 2021년 56년 동안 이끄신 광복군 1세대 몇 분만 남고 모두 국립현충원 동지들의 곁으로 가셨습니다.
56년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단돈 1원의 운영비도 지원받지 못한 노병들께서는 생명 수당인 대일 청구권 자금 이자에서 지급되는 보상금에서 십시일반 떼어 내 동지회를 운영하고 자신들과 가족들의 길흉사를 챙기고 장학회를 설립하여 후손을 키웠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광복군 노병들께서 56년간 작성해놓은 회비 장부에 적힌 1,000원, 5,000원의 글자를 마주 대하면서 국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그러나 노병들은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며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태평성대를 기원하시며 575 분들의 동지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한국광복군은 국군의 뿌리라고 천명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 국군의 수장 국방부 장관마저도 한국광복군 추모 행사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은 아십니까?

오늘 80주년 대일 선전포고 기념식부터 한국광복군 동지회를 승계한 한국광복군 2세대가 사단법인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로 변경하여 보훈처의 승인받아 추모와 선양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중국은 자국의 비용으로 중경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터에 4층 건물을 건립하여 타국의 독립투사들을 추모. 선양하는 기념관을 건립하였고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창설된 유주에 중국은 한국 청년들과 한국광복군들의 독립투쟁사를 기념하고 일본군에 무참히 돌아가셔서 시신도 없는 한국광복군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대국을 자랑하며 틈만 나면 한국광복군은 국군의 뿌리라고 홍보하는 한국광복군들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 분들을 기리고 후세에 역사를 전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습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본과 세계인들에게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일본인들이 전장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까?
가짜 독립 광복군을 확인하고도 모른 체하고 있는 정부와 관리들은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우리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있는 한,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독립투쟁의 역사는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광복군 노병들의 단체인 광복군동지회의 운영비를 56년간 외면하고 그분들이 생존해 계셨을 때 먼저 가신 동지들을 추모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는 한국광복군동지회의 공법단체 지정에는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이제 2세대로의 승계는 1세대 1,000여 한국광복군들의 추모와 그리고 그분들의 조국애와 민족정신을 선양하고 한국광복군사를 편찬하여 후세에 전해야 하는 혈연적 동지적 의무의 승계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인 한국광복군을 기리고 역사를 지켜가기 위한 한국광복군 기념관 건립과 (사)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의 공법단체 지정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실천하여 한국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로서의 정통성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성명서 80주년 기념일을 정부와 국민이 한국광복군의 이념인 자유. 평등. 평화의 신념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산화하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과 독립유공자들을 추모. 선양하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뒤돌아보는 의미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국가의 위기 때에는 솔선수범 앞장서서 대한민국을 수호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든 공무원 여러분들께서도 “역사를 잊는 민족의 미래는 없다”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으시고 독립운동가들의 신념인 대한민국의 자유. 평등.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

2021.12.10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 선전포고 80주년
한국광복군 부모님들을 그리며
직계 후손 (사)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 회장 이 형 진